인터넷 신문

  • 장(腸)을 먹여 키우는 뿌리, 초석잠

    누에 닮은 덩이뿌리 속 올리고당이 장내 미생물을 깨우는 법 — 그리고 장에서 뇌로 이어지는 한 줄기 신호

    [음식한방] 초석잠 · 한방조아


    우리 몸에서 가장 붐비는 곳은 어디일까. 뇌도, 심장도 아니다. 답은 ‘장(腸)’이다. 대장 한 자락에만 수십조 마리의 미생물이 산다. 이들은 우리가 먹은 것을 나눠 먹고, 그 대가로 몸에 이로운 물질을 만들어 돌려준다. 말하자면 장은 거대한 발효 공장이자, 미생물이라는 세입자들이 북적이는 마을이다.

    그 마을에 유난히 좋은 밥이 되는 뿌리가 하나 있다. 생김새는 볼품없다. 누에를 닮았다 하여 이름에 ‘누에 잠(蠶)’ 자가 붙었고, 큰 골뱅이나 통통한 번데기처럼도 보인다. 그러나 이 못난 뿌리가 장 속 미생물에게는 진수성찬이다. 이름하여 초석잠(草石蠶)이다.

    못생겼지만, 엄연한 ‘먹는 뿌리’

    초석잠은 꿀풀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의 덩이뿌리다. 원산지는 중국이고, 일본에서는 ‘쵸로기’라 부르며 정월 요리에 귀히 쓴다. 우리나라에는 일본을 거쳐 들어온 것으로 전해지며, 달고 은은하게 쓴 맛에 사근사근 씹히는 식감 덕에 ‘감로자(甘露子)’, 즉 단 이슬 같은 뿌리라는 별명도 얻었다. 생으로 오래 두기 어려워, 우리 밥상에서는 주로 장아찌나 동치미로 담가 오래 두고 먹는 반찬으로 자리 잡았다. 식품 원료로도 정식 등재돼 있으니, 낯설어 보여도 엄연한 ‘먹는 뿌리’다.

    주인공은 전분이 아니라 올리고당

    초석잠의 진짜 정체는 그 성분에 있다. 흔히 뿌리라 하면 감자처럼 전분 덩어리를 떠올리지만, 초석잠은 다르다. 그 탄수화물의 상당 부분이 전분이 아니라 ‘올리고당’이다. 그중에서도 스타키오스(stachyose)라는 올리고당이 핵심이다. 여기에 뇌 건강 이야기에 자주 등장하는 콜린, 그리고 스타키드린·페닐에타노이드 같은 성분도 함께 들어 있다.⁶

    올리고당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 이 대목이 초석잠 이야기의 심장이다.

    당신의 장 속에서 일어나는 ‘발효’

    올리고당은 우리 몸의 소화효소로 잘 분해되지 않는다. 그래서 위와 소장을 거의 그대로 통과해 대장까지 내려간다. 그리고 바로 그곳에서, 장내 유익균의 먹이가 된다. 이렇게 좋은 균의 밥이 되어 주는 성분을 ‘프리바이오틱스(prebiotics)’라 부른다. 살아 있는 균 자체를 넣어 주는 프로바이오틱스(유산균)와 짝을 이루는 개념으로, 프리바이오틱스는 이미 장에 살고 있는 유익균을 먹여 키운다.

    먹이를 받은 유익균은 이 올리고당을 발효시킨다. ‘초석잠 발효’라는 말의 실체가 바로 이것이다. 항아리 속 발효가 아니라, 당신의 장 속에서 일어나는 발효다. 미생물은 올리고당을 분해하며 수를 불리고, 그 과정에서 장 건강에 이로운 물질을 만들어 낸다. 유익균이 늘면 유해균이 설 자리가 줄고, 장 환경이 한결 정돈된다.

    이 ‘장을 먹이는’ 힘은 이미 산업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한 국내 소재기업은 초석잠에서 프리바이오틱스 성분을 뽑아 피부 미생물의 균형을 맞추는 화장품 원료로 개발해 특허를 등록했고³, ‘초석잠 발효대사체’를 만드는 방법에 대한 특허도 나와 있다.⁴ 반찬으로 소박하게 먹히던 뿌리가, 장과 피부의 미생물을 겨냥한 소재로 다시 태어나고 있는 셈이다.

    실험실이 확인한 것들

    장 이야기에 힘을 보태는 연구도 있다. 순창에서 재배한 초석잠 추출물을 분석한 국내 연구에서는 항산화 활성과 함께, 염증 신호물질(TNF-α, IL-6 등)의 생성을 억제하는 항염 효과, 그리고 식중독을 일으키는 균이나 위장에 사는 헬리코박터균 등에 대한 항균 활성이 확인됐다.² 다만 이는 세포와 시험관 수준의 결과다. ‘초석잠을 먹으면 염증이 낫는다’는 식으로 곧장 이어 붙일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어디까지나 앞으로 더 살펴볼 ‘가능성의 실마리’로 읽는 것이 옳다.

    그리고, 장에서 뇌로

    장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연스레 뇌가 따라온다. 최근 과학은 장과 뇌가 신경과 미생물 대사물질을 통해 끊임없이 신호를 주고받는다는 사실을 밝혀 왔다. 이른바 ‘장-뇌 축(gut-brain axis)’이다. 장이 편안하면 뇌도 그 덕을 본다는 것이다.

    초석잠에도 이 대목에 걸린 연구가 하나 있다. 2024년 국립호남권생물자원관은 알츠하이머를 유발한 실험용 쥐에게 고농도 초석잠 추출물을 먹였더니, 치매 치료제로 쓰이는 도네페질보다 단기기억력을 약 1.1배 더 끌어올렸다고 발표하고 관련 특허를 등록했다.¹

    솔깃한 결과다. 그러나 여기에는 분명한 선을 그어야 한다. 이것은 ‘쥐’에게 ‘고농도 추출물’을 준 실험이지, 사람이 초석잠 반찬을 먹어서 얻은 결과가 아니다.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 근거는 아직 없다. “초석잠이 치매를 예방한다”, “약보다 낫다”는 말은 적어도 지금으로서는 앞서간 이야기다. 초석잠의 뇌 이야기는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 앞으로 지켜볼 연구로 남겨 두는 편이 정직하다. 초석잠의 진짜 무대는, 역시 장이다.

    어떻게 먹을까

    가장 익숙한 방법은 장아찌와 동치미다. 아작아작 씹히는 식감이 좋아 오래 두고 먹기 좋다. 생으로 보관이 어려우니 말려서 가루를 내 두면 쓰임이 넓어진다. 따뜻한 물이나 우유에 타 마셔도 되고, 빵이나 쿠키 반죽에 섞어도 된다. 잘게 썰어 볶은 뒤 차로 달여 마시는 방법도 있다. 한 가지 팁이라면, 초석잠 자체에 은은한 단맛이 있으니 요리할 때 설탕은 줄이는 편이 좋다.

    먹기 전에 짚어둘 것

    좋다고 아무나, 아무렇게나 먹어도 되는 것은 아니다. 임신 중에는 자궁을 수축시킬 수 있어 피하는 것이 좋고, 몸이 냉하거나 장이 찬 사람은 오히려 설사를 겪을 수 있다. 장을 활발히 움직이는 올리고당의 특성상 예민한 사람은 가스가 차거나 배가 더부룩해질 수 있으니, 처음에는 조금씩 시작하는 것이 안전하다. 하나 더, 시장에서는 ‘초석잠’과 이름이 비슷한 ‘석잠풀’, ‘쉽싸리’가 자주 뒤섞여 팔린다.⁵ 사는 것이 정말 초석잠의 덩이뿌리가 맞는지 확인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결국, 장이 먼저다

    건강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흔히 뇌부터, 심장부터 떠올린다. 그러나 몸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장에 닿는다. 장이 편안해야 잘 자고, 잘 먹고, 기분도 맑다. 초석잠은 그 장 속 보이지 않는 마을 사람들—수십조 마리의 미생물—에게 건네는 한 끼의 밥이다. 화려하지 않아도, 매일의 밥상에서 장을 먼저 챙기는 일. 약과 음식의 뿌리가 하나라는 옛말은, 어쩌면 이 못난 뿌리 하나에서도 조용히 증명되고 있는지 모른다.


    참고 자료 및 각주

    아래는 본문에 인용한 연구·자료로, 각 항목의 연구 유형을 함께 밝혀 두었다. 현재 초석잠에 대한 사람 대상 임상시험(RCT) 데이터는 확인되지 않으며, 아래 근거는 동물실험·세포(시험관) 연구·특허·문헌 자료다. 초석잠의 뇌·기억력 관련 내용은 아직 사람에서 입증된 효과가 아니다.

    1. 국립호남권생물자원관, 초석잠 추출물의 단기기억력·인지기능 개선 효과 발표(2024. 10. 29). 연구 유형: 동물실험 — 알츠하이머 유발 형질전환 쥐에 추출물 400㎎/㎏ 투여, 도네페질 대비 단기기억력 약 1.1배 개선. 관련 조성물 특허 등록. (보도: 연합뉴스·SBS 등)
    2. 초석잠 추출물의 항산화·항균·항염 활성 연구(한국학술지인용색인 KCI 등재; 순창 재배 초석잠). 연구 유형: 세포·시험관 연구 — HepG2·RAW264.7·Caco-2 세포에서 항산화, 염증성 사이토카인(TNF-α·IL-1β·IL-6) 억제, 식중독균·헬리코박터균 등 항균 지표 확인. 초석잠 뿌리 추출물의 항산화 활성에 관한 별도 KCI 연구도 함께 참고.
    3. 대봉엘에스, 초석잠 유래 스킨 마이크로바이옴(프리바이오틱스) 소재 개발 및 ‘초석잠 추출물을 포함하는 화장료 조성물’ 특허 등록(등록번호 제10-2335569호, 2022). 자료 유형: 특허·기업 발표.
    4. 초석잠 발효대사체 제조방법(특허 KR101394533B1). 자료 유형: 특허.
    5. 한동하, ‘초석잠 vs 석잠풀 vs 쉽싸리’ 구별과 효능(식의보감 칼럼). 자료 유형: 전문가 칼럼 — 시중 유통 과정의 혼동에 주의.
    6. 초석잠의 성분(콜린·스타키오스·페닐에타노이드 등)과 전통적 활용에 관한 일반 문헌·건강 매체 자료. 자료 유형: 일반 문헌 — 뇌·치매 관련 서술은 대부분 전통적 사용과 성분 추정에 근거하며, 사람 대상 효과가 입증된 것은 아니다.

    기사의 무단 전재 복사를 금합니다.


    ※ 이 기사는 공개된 연구와 자료를 바탕으로 한 일반적인 건강 정보이며, 의학적 진단이나 치료·처방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초석잠의 뇌·기억력 관련 내용은 동물실험 단계의 결과로, 사람에 대한 효과가 입증된 것은 아닙니다. 질환이 있거나 약을 복용 중이라면 섭취 전 전문가와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한방조아 · 음식한방

  • 영조대왕 약식동원 밥상

    임금의 밥상에는 약이 숨어 있었다

    ― 조선 최장수 왕 영조의 ‘약식동원(藥食同源)’ 장수 밥상

    [건강밥상] 칼럼 · 한방조아


    여든셋, 임금에게는 기적이었던 나이

    조선의 임금들은 좀처럼 오래 살지 못했다. 스물일곱 분의 왕 가운데 환갑을 넘긴 이는 손에 꼽을 정도였고, 평균 수명은 채 쉰을 채우지 못했다. 가장 좋은 옷이 지어지고, 가장 귀한 약재가 모이며, 천하의 진미가 다 올라오는 자리에 앉아서도 그러했다. 권력의 정점이 곧 건강의 정점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오히려 넘치는 음식과 끊이지 않는 정무, 깊은 밤까지 이어지는 긴장이 임금들의 몸을 갉아먹었다.

    그 틈에서, 홀로 여든셋까지 산 임금이 있다. 영조다.

    여든셋이라는 숫자는 오늘날에도 적지 않은 나이지만, 평균 수명이 마흔을 겨우 넘기던 18세기 조선에서는 그야말로 기적에 가까웠다. 게다가 그는 단지 오래 숨만 붙어 있던 것이 아니었다. 일흔이 넘어서도 흰머리가 거의 없고 피부가 맑았다고 전한다. 쉰두 해라는, 조선 왕조에서 가장 긴 재위 기간 동안 탕평과 균역의 개혁을 밀어붙일 만큼 정신도 또렷했다.

    무엇이 그를 이토록 오래, 그리고 건강하게 살게 했을까. 영험한 단약이었을까, 비밀스러운 보약이었을까. 답은 뜻밖에도 거창한 곳에 있지 않았다. 그것은 매일 아침저녁으로 그의 앞에 놓이던 평범한 밥상 위에 조용히 숨어 있었다. 화려하지 않았으나 빈틈이 없었고, 소박했으나 그 안에 약(藥)을 품은 밥상. 옛사람들은 그것을 일러 약식동원, 약과 음식의 뿌리가 본디 하나라 하였다.


    다섯 번을 세 번으로 — 덜어냄의 지혜

    영조의 밥상을 이해하려면, 무엇을 올렸는가보다 무엇을 덜어냈는가에서 시작하는 편이 옳다.

    본래 조선의 임금은 하루에 다섯 번 상을 받았다. 이른 아침의 초조반(初早飯)에서 시작해 아침 수라, 낮것상, 저녁 수라, 그리고 밤참에 이르기까지. 임금의 하루는 끊임없이 차려지고 물려지는 상들로 채워졌다. 그러나 영조는 이 다섯 번을 과감히 세 번으로 줄였다. 임금에게 허락된 풍요의 절반 이상을 스스로 내려놓은 것이다.

    덜어내되, 흐트러뜨리지는 않았다. 영조는 대신들과 머리를 맞대고 국정을 논하다가도 식사 시간이 되면 회의를 멈추고 수라부터 받았다고 한다. 정무가 아무리 급해도 끼니의 시각만은 어기지 않았다. 다른 임금들이 아침을 부득이 거르거나 늦은 밤 출출함을 야식으로 달래며 식사 리듬을 흩뜨릴 때, 영조의 하루는 늘 같은 시각, 같은 양의 밥으로 단정하게 채워졌다.

    상에 오른 밥 또한 단출했다. 윤기 흐르는 흰 쌀밥 대신, 현미와 보리와 흑미와 콩을 섞은 거친 잡곡밥. 기름진 고기를 앞세우기보다 제철에 난 채소를 곁에 두었다. 아침에는 부드러운 죽 한 그릇, 점심과 저녁에는 밥과 김치, 시금치와 청경채 같은 나물, 그리고 약간의 장류면 족했다.

    오늘날의 언어로 옮기면 이렇다. 소식(小食), 규칙적인 식사, 통곡물 위주의 식단.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그러나 좀처럼 지키지 못하는 그 원칙들을 영조는 삼백 년 전에 묵묵히 실천하고 있었다.


    입맛을 잃은 노왕과 ‘밥상의 네 보물’

    그렇다고 영조의 밥상이 풀과 잡곡만으로 차려진 금욕의 식탁이었다고 여긴다면, 그것은 절반만 아는 것이다.

    『승정원일기』 영조 44년(1768년) 7월 28일. 일흔을 훌쩍 넘긴 노왕이 내의원 도제조 김용택과 마주 앉아 이런 말을 남겼다.

    “나이가 들면서 입맛을 잃은 줄 알았는데, 송이버섯과 날 전복과 새끼 꿩과 고추장이 있으면 밥을 잘 먹는다. 내 입맛이 아주 망가진 것은 아니다.”

    소식하던 임금의 입을 끝내 열게 한 네 가지. 후세 사람들은 이를 영조의 ‘밥상의 네 보물’이라 부른다. 향이 깊은 송이버섯, 바다의 정기를 머금은 전복, 기름기 적고 담백한 꿩고기, 그리고 갓 등장한 신문물 고추장.

    흥미로운 것은 이 네 가지가 결코 입만 즐겁게 하는 사치품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전복은 예부터 기력을 보하는 귀물로 여겨졌고, 꿩고기는 살이 무르고 담백해 소화가 쉬웠다. 치아가 약했던 영조에게는 더없이 알맞은 음식이었다. 그는 “어머니는 절편과 병자(餠炙)를 좋아하시는데, 나는 치아가 약해 먹지를 못한다”고 토로한 적이 있을 만큼 이가 부실했다. 부드럽고 담백한 전복과 꿩은 단순한 별미가 아니라, 노왕의 몸에 맞춘 ‘약이 되는 음식’이었던 셈이다.

    고추장은 또 어떠한가. 지금이야 어느 밥상에나 오르는 흔한 양념이지만, 영조의 시대에는 사정이 달랐다. 고추장이 문헌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이 1720년 무렵, 어의 이시필의 『소문사설』에서였으니, 영조에게 고추장은 갓 세상에 나온 진귀한 발명품이었다. 제조법도 널리 퍼지지 않아 때로는 약재처럼 다루어지던 귀물. 노왕은 그 붉고 매콤한 새 맛에 반찬을 찍어 먹고, 때로는 밥에 쓱쓱 비벼 한 그릇을 비웠다고 한다.

    소박한 밥상 위에 놓인 네 가지 보물. 그것은 사치가 아니라, 입맛 잃은 노년의 몸을 다독이는 영조 나름의 처방이었다. 약과 음식의 뿌리가 같다는 말이, 바로 이 밥상에서 조용히 증명되고 있었다.


    “전복 한 마리도 백성에게는 짐이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가장 빛나는 대목은 그다음에 있다.

    영조가 전복을 좋아한다는 말을 들은 도제조가 곧바로 아뢰었다. “그러면 생복(生鰒)을 따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좋아하시는 음식이니 마땅히 더 갖추어 올리겠다는, 신하로서 당연한 말이었다.

    그러나 영조의 답은 뜻밖이었다.

    “영의정이 호남 어사로 있을 때, 큰 전복 한 마리 따는 것도 백성에게는 폐가 된다고 하였다.”

    그러고는 더 가져오지 말라 일렀다. 때는 영조 44년, 임금의 권세가 하늘을 찌르던 시절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바다의 전복을 모두 상에 올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 앞에서 오히려 멈춰 섰다. 전복 한 마리를 따기 위해 바닷속으로 들어갈 백성의 수고를, 노왕은 잊지 않았다.

    좋아하되 탐하지 않는 것. 누릴 수 있으나 절제하는 것. 영조의 밥상이 단지 ‘오래 사는 밥상’을 넘어 ‘품격 있는 밥상’이 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건강이 몸을 위한 절제라면, 이 한마디는 마음을 위한 절제였다.


    삼 일에 한 번, 의원을 부른 임금

    밥상 밖의 이야기 하나를 덧붙이자. 영조의 장수에는 식습관 못지않게 중요한 비결이 또 하나 있었으니, 바로 ‘꾸준한 점검’이다.

    기록에 따르면 영조는 재위 52년 동안 내의원에서 무려 7천 회가 넘는 진료를 받았다. 한 달에 열한 번 남짓, 사흘에 한 번꼴로 자신의 몸 상태를 살핀 셈이다. 작은 이상도 그냥 넘기지 않고 부지런히 들여다본 것이다. 오늘날로 치면 ‘정기 검진의 달인’이라 할 만하다.

    좋은 밥을 규칙적으로 먹고, 제 몸을 부지런히 살피고, 좋아하는 것 앞에서도 절제할 줄 알았던 임금. 그의 장수는 우연이 아니라, 매일의 작은 습관이 쌓아 올린 성실의 결과였다.


    오늘의 밥상에게 묻는다

    신하들이 장수의 비결을 묻자, 영조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입고 먹는 것이 후하지 않은 것이 곧 보람이다.”

    화려하지 않아도 좋다는 말이다. 넘치지 않아도 충분하다는 말이다. 거친 잡곡밥과 제철 채소, 그리고 가끔의 담백한 전복과 꿩 한 점. 약이 되는 음식을 약처럼 귀히 여기되, 한 끼의 절제를 잊지 않았던 노왕의 밥상은 삼백 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에게 묻는다.

    오늘 당신의 밥상은 무엇으로 차려졌는가. 그 위에는 약이 숨어 있는가, 아니면 과함만이 놓여 있는가.

    영조의 장수 밥상이 일러주는 답은 의외로 간결하다. 소박하게, 규칙적으로, 그러나 때로는 몸을 위해 정성스럽게. 약과 음식의 뿌리는 본디 하나였으니, 가장 좋은 보약은 늘 우리의 밥상 위에 있었다.


    ※ 이 칼럼에 인용된 영조의 발언과 일화는 『승정원일기』(영조 44년 7월 28일 등)와 관련 문헌 기록에 근거합니다. 음식의 건강 효능에 관한 서술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내용으로, 의학적 진단이나 처방이 아님을 밝힙니다.

    한방조아 · 건강밥상

  • 할머니의 녹두 세안이 K-뷰티의 원조였다

    장마철, 피부가 번들거리면서 동시에 당기는 그 기분 나쁜 느낌. 유분은 넘치는데 수분은 부족한 유수분 불균형이다.

    그런데 이 고민, 조선 시대 여인들은 이미 나름의 방식으로 다루고 있었다.

    녹두 가루를 물에 개어 세수하고, 쌀뜨물로 세안했다. 그리고 그 전통이 오늘날 K-뷰티의 한 뿌리가 됐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한국 화장품 수출은 2025년 약 114억 달러로 역대 최고치를 새로 썼고, 글로벌 뷰티 트렌드 보고서들은 ‘한방 원료의 현대적 재해석’을 2026년 K-뷰티의 핵심 흐름 중 하나로 꼽는다. 실제로 조선미녀 같은 브랜드는 인삼·쌀겨 같은 한방 원료를 현대적으로 풀어내 해외에서 두꺼운 팬층을 만들었다.

    할머니의 손끝이 전 세계 화장대에 닿고 있는 셈이다.

    장마철, 곁에 두면 좋은 한방 3종

    녹차 — 차분함. 카테킨을 품은 녹차는 예부터 달아오른 피부를 가라앉히는 데 써온 재료다. 장마철 번들거림이 신경 쓰일 때, 녹차 성분 토너 한 병을 곁에 두는 이유다.

    어성초 — 균형. 한방에서 ‘십약(十藥)’이라 불릴 만큼 두루 쓰였다. 피부가 예민해지는 시기, 어성초 성분 제품을 부분적으로 곁들이는 사람이 많다.

    감초 — 맑음. 설화수부터 이니스프리까지, 적지 않은 제품에 감초가 들어간다. 예부터 피부를 맑고 깨끗하게 가다듬는 재료로 여겨져 온 덕이다.

    장마 밤, 5분 오감 리추얼

    빗소리를 배경으로 켜두고(귀), 라벤더 향초를 켜고(코), 쿨링 마스크팩을 올리고(피부), 눈을 감는다(쉼). 단 5분. 스킨케어가 ‘해야 하는 일’에서 ‘하고 싶은 시간’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 이 글의 성분 이야기와 전통적 쓰임은 정보 제공 목적이며, 특정 질환의 예방·치료 효과를 보장하지 않습니다. 피부 반응은 개인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출처 — 한국 화장품 수출액: 산업통상자원부 / 2026 K-뷰티 트렌드(한방 원료 현대화): 글로벌 뷰티 트렌드 보고서(예: MINTOIRO 「뷰티 트렌드 전망 2026」) 및 업계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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