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daal1124

  • 당귀 천궁 작약 숙지황이 유산균을 만나는 밤 — 발효 사물차

    네 가지 약재를 우린 차에 유산균을 더하면, 장 속 미생물이 반기는 한 잔이 된다

    [음식한방] 발효 사물차 · 한방조아

    발효는 오래된 것을 새롭게 만드는 마법이다. 우유가 요구르트가 되고, 배추가 김치가 되고, 콩이 된장이 되는 동안,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들은 재료를 잘게 나누고 새로운 풍미와 이로움을 빚어낸다. 그렇다면 오래된 약재를 우린 차에도 이 마법을 걸 수 있을까. 요즘 조용히 시도되는 것이 바로 ‘발효 사물차’다.

    사물차, 네 가지 약재의 오랜 조합

    사물차는 네 가지 약재—숙지황, 당귀, 천궁, 백작약—를 우려낸 차다. ‘사물(四物)’, 곧 ‘네 가지 재료’라는 이름 그대로다. 이 조합은 예로부터 기혈을 다스리는 약재로 여겨져, 특히 여성을 위한 약재차로 즐겨 쓰였다고 전해진다. 붉고 진한 빛깔에 은은한 단맛과 쌉싸름함이 감도는 것이 특징이다.

    네 가지를 잠깐 들여다보면 이렇다. 숙지황은 지황의 뿌리를 여러 번 쪄서 말린 것으로 차의 깊은 단맛과 색을 낸다. 당귀는 특유의 향으로 잘 알려진 뿌리약재이고, 천궁 역시 향이 강한 뿌리다. 백작약은 작약의 뿌리로 은은한 신맛과 부드러움을 더한다. 넷이 어우러지면 한 잔의 차로도 제법 묵직한 풍미가 난다.

    (이 글은 예로부터 전해오는 이야기를 소개하는 것으로, 특정 질병의 예방이나 치료 효과를 주장하지 않는다. 자세한 유의사항은 글 끝에 밝혀 둔다.)

    왜 굳이 발효를 시킬까

    그냥 우려 마셔도 되는 차를, 왜 굳이 발효까지 시킬까.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발효를 거치면 성분이 더 잘게 분해된다. 미생물이 재료를 분해하는 과정에서 큰 분자들이 작은 조각으로 쪼개지고, 그만큼 소화와 흡수가 수월해진다고 알려져 있다. 실제로 약재를 유산균으로 발효해 흡수를 돕는 방법은 특허로도 나와 있을 만큼 연구되어 온 분야다.[1]

    둘째, 그리고 이것이 요즘 발효차가 주목받는 진짜 이유인데—발효는 ‘장 속 미생물’과 이어진다. 우리 장에는 수십조 마리의 미생물이 살며 건강에 깊이 관여한다. 유산균으로 발효한 음료에는 유익균과 그 대사산물이 담기고, 이는 장내 환경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매력적인 지점이다. 오래된 약재차가 ‘장을 생각하는 한 잔’으로 다시 태어나는 셈이다.

    발효를 시키는 건 ‘균’이지 다른 무엇이 아니다

    한 가지 짚어둘 것이 있다. 발효를 일으키는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미생물, 그중에서도 유산균이다. 시중에는 ‘효소’나 ‘코엔자임’ 같은 말이 발효와 뒤섞여 쓰이곤 하지만, 효소나 코엔자임은 몸속 화학 반응을 돕는 물질일 뿐 스스로 재료를 발효시키지는 못한다.[2] 발효 사물차를 만들려면 살아 있는 유산균이 있어야 한다. 이 점만 분명히 해두면, 나머지는 어렵지 않다.

    집에서 만드는 발효 사물차

    준비물은 단출하다. 사물차 약재와 유산균의 먹이가 될 약간의 당분, 그리고 시판 유산균 분말이면 된다.

    재료 (약 1L 기준)

    • 숙지황·당귀·천궁·백작약 각 6g
    • 물 1.2L
    • 올리고당(또는 꿀·설탕) 50g — 발효 먹이용
    • 시판 유산균 분말(락토바실러스 플란타럼 등) 2포

    만드는 법

    1. 달이기 — 약재를 가볍게 헹궈 냄비에 담고 물을 부어, 끓으면 중약불로 30~60분 달여 약 1L의 진한 약액을 만든다. (시판 사물차 티백이나 농축액을 물에 풀어 대체해도 된다.)
    2. 살균 후 식히기 — 약액을 한 번 더 팔팔 끓여(90℃ 이상) 잡균을 없앤 뒤, 25~35℃로 충분히 식힌다. 뜨거울 때 유산균을 넣으면 균이 죽어 발효가 되지 않는다.
    3. 먹이 넣기 — 식힌 약액에 올리고당을 녹여 넣는다. 유산균이 발효할 먹이가 된다.
    4. 유산균 접종 — 유산균 분말을 넣고 열탕 소독한 유리나 스테인리스 도구로 고루 젓는다. (나무 도구는 잡균이 남기 쉬워 피한다.)
    5. 발효 — 소독한 유리병에 담아 뚜껑을 덮고, 25~37℃ 되는 곳에 1~3일 둔다. 은은한 신맛이 돌고 향이 부드러워지면 완성이다.[3]
    6. 보관·음용 — 완성되면 냉장 보관하고 2~3일 안에 마신다. 처음에는 하루 반 컵 정도 소량부터 시작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위생이다. 곰팡이가 피거나 이상한 냄새·색이 보이면, 아깝더라도 미련 없이 버려야 한다.

    마시기 전에 짚어둘 것

    몸에 좋다고 누구에게나 맞는 것은 아니다. 사물차를 이루는 약재들은 성질이 뚜렷해, 임신 중이거나 출혈 경향이 있는 경우, 항응고제(와파린 등)를 복용 중인 경우, 소화가 약하고 설사가 잦은 경우, 감기나 급성 염증이 있을 때는 맞지 않을 수 있다. 무엇보다 이런 약재는 체질과 상태에 따라 득이 되기도 실이 되기도 하므로, 꾸준히 마실 생각이라면 한의사와 먼저 상의하는 것이 좋다.

    시간과 미생물에게 맡기는 한 잔

    발효는 서두른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재료를 준비해 두면, 나머지는 미생물이 시간을 들여 해낸다. 오래된 약재를 우리고, 거기에 유산균을 더해 며칠을 기다리는 일. 그 끝에 남는 것은 장 속 보이지 않는 미생물들에게 건네는, 조금 특별한 한 잔이다. 화려하지 않아도, 몸의 뿌리인 장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만나는 자리에, 발효 사물차가 있다.

    참고 자료 및 각주

    아래는 본문에 참고한 자료다. 이 기사는 만드는 방법과 배경 정보를 담은 것으로, 특정 질병의 예방·치료 효과를 주장하지 않는다. 사물차에 쓰인 약재의 전통적 쓰임은 옛 문헌·구전에 근거한 것으로, 사람 대상 임상시험으로 입증된 효능이 아니다.

    1. 한약재(감초·황기·당귀 등)를 달여 유산균으로 발효한 추출물 및 그 제조방법에 관한 공개특허(KR20110118911A). 해당 특허는 발효를 통해 성분 흡수를 돕고 장내 유익균 증식·장 면역과 연결짓는다. 자료 유형: 특허.
    2. 발효는 미생물(유산균·효모 등)이 탄수화물을 이용해 알코올·유기산 등을 만들어 내는 현상이며, 코엔자임(조효소)은 효소가 기능하도록 돕는 유기물로 코엔자임 Q10 역시 그런 조효소이자 항산화 성분이다(발효식품 교육자료 및 MSD 매뉴얼 등 의학 정보). 즉 효소·코엔자임은 발효를 ‘일으키는’ 미생물과 역할이 다르다. 자료 유형: 일반 교육·의학 정보.
    3. 유산균 발효음료의 일반적 제조 절차 참고 — 원료를 90~100℃로 살균한 뒤 20~30℃로 냉각하고, 락토바실러스 플란타럼 등 유산 균주를 접종해 24~26℃에서 3~6일 숙성시킨다(유산균 발효음료 제조방법 특허). 가정에서의 유산균 발효 적정 온도는 균주에 따라 대략 22~37℃로 차이가 있다. 자료 유형: 특허·발효 실용 자료.

    ※ 위 자료의 서지사항(특허번호·게재지·상태 등)은 게재 직전 원문에서 한 번 더 확인하시길 권합니다.

    ※ 이 기사는 공개된 자료를 바탕으로 한 일반적인 정보이자 만드는 방법 안내이며, 의학적 진단이나 질병의 예방·치료를 주장하지 않습니다. 사물차에 쓰이는 약재는 체질과 건강 상태에 따라 적합성이 다르므로, 지속적으로 드실 경우 한의사 등 전문가와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임신 중이거나 특정 질환이 있거나 약을 복용 중이라면 특히 주의하세요. 집에서 만든 발효물은 위생과 보관에 각별히 신경 쓰시기 바랍니다.

    한방조아 · 음식한방

  • 일본에 10주밖에 안 남은 ‘장군(將軍)’

    창기(創基) 150주년 홋카이도대학 약초원에서 만난 2,000년 된 한방의 뿌리

    한방조아 취재팀 · 2026.06 · 홋카이도 삿포로 현장 취재 · 홋카이도대학 약학부 취재 협조

    ▲ 홋카이도대학 캠퍼스. 초록빛 가로수 사이로 약학부(School of Pharmaceutical Sciences)와 생명과학원 안내판이 보인다. 사진 = 한방조아 취재팀

    ▲ 약학부 건물 유리문의 ‘150th HOKKAIDO UNIVERSITY’. 1876년 삿포로농학교 이래 창기 150주년을 맞아 연구 시설을 일반에 공개했다. 사진 = 한방조아 취재팀

    2026년, 홋카이도대학이 창기(創基) 150주년을 맞았다. 1876년 삿포로농학교로 출발한 이래 한 세기 반. 이를 기념하는 다양한 행사의 일환으로, 평소 연구 목적으로만 운영되던 시설들이 일반에 공개됐다. 약학부 부속 약용식물원도 그중 하나였다.

    한방조아 취재팀은 홋카이도대학 약학부에 취재 협조를 요청하는 메일을 보낸 뒤, 삿포로 캠퍼스를 찾았다. 약학부 건물 바로 옆, 6,272㎡의 약용식물원. 162과 1,246종의 약용식물이 살고 있는 이 정원에서, 기자는 거의 멸절된 한 식물 앞에 섰다.

    북해대황(北海大黄). 학명 Rheum palmatum L. 마디풀과.

    ▲ 홋카이도대학 약용식물원의 북해대황. 높이 2m에 육박하는 꽃대 위로 붉은 날개 달린 열매가 빽빽이 달려 있다. 뒤로 약초원의 온실이 보인다. 일본 전체에 약 12주밖에 남지 않은 희귀 약용식물이다. 사진 = 한방조아 취재팀 (2026.06)

    높이 2미터에 육박하는 꽃대 위로, 붉은 날개 달린 열매가 빽빽이 달려 있었다. 그 아래로 직경 50cm가 넘는 거대한 손바닥 모양의 잎이 땅을 덮고 있었다. 학명의 ‘palmatum’이 ‘손바닥’이라는 뜻인데, 보는 순간 납득이 갔다.

    멸절 위기에서 되살린 100년의 역사

    ▲ 약초원 울타리에 걸린 안내판 「희소한 약용식물 홋카이다이오우」. 1927년 독일 뮌헨에서 도입된 이래 거의 100년간의 역사가 연표로 기록되어 있다. 사진 = 한방조아 취재팀

    안내판의 연표가 이 식물의 운명을 말해주고 있었다. 1927~28년, 도야마약학전문학교의 다카하시 류조 교수가 독일 뮌헨 식물원에서 종자를 입수해 홋카이도대학 식물원에 도입한 것이 시작이었다. 1961년 7월, “북해대황”이라는 이름이 공식 명명됐고, 같은 해 11월 묘목은 2,200주까지 늘었다.

    그런데 안내판 맨 아래 줄이 충격적이었다. 2018년 기준, 홋카이도대학 약초원 10주, 히노키신약 농원 2주. 합계 약 12주. 2,200주에서 12주로. 안내판 제목의 ‘희소한 약용식물’이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니었다.

    대황속(Rheum) 식물은 타가수분성이 강해 종간잡종이 쉽게 생기기 때문에 순수 계통을 유지하려면 포기나누기(영양증식)로만 번식시켜야 한다. 홋카이도대학 약학부는 거의 100년간 이 까다로운 방식으로 순수 종을 지켜왔다. 일본 국내 재배 계통은 이 ‘북해대황’과 다케다약품공업의 ‘신슈대황’ 두 가지뿐이다.

    한 생약의 원종을 한 세기 가까이 지켜온 이 약초원은, 단순한 정원이 아니라 살아있는 약학 박물관이다. 그리고 그 약초원이 속한 홋카이도대학이 올해 150주년을 맞았다는 것은, 이 보존의 역사가 대학 전체 역사의 3분의 2에 해당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대황 — 2,000년 된 ‘장군’의 약식동원 가치

    대황은 동서양 모두에서 가장 오래된 약재 중 하나다. 중국에서는 전국시대의 ‘산해경’에 이미 기재되었고, 유럽에서는 서기 77년 디오스코리데스의 ‘그리스 본초’에 기록되었다. 일본에는 나라시대 정창원(正倉院)에 보존된 기록이 있다.

    신농본초경은 대황의 약효가 너무 강해 ‘장군(將軍)’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주요 성분인 센노사이드(sennoside)는 장 운동을 촉진하는 완하(緩下) 작용으로, 현재도 일본약국방에 수재돼 의료 현장에서 사용되고 있다. “몸에 순한 생약 변비약”으로 일반 의약품에도 들어가며, 동양에서 가장 수요가 많은 생약 중 하나로 꼽힌다.

    현재 대황은 대부분 중국에서 수입되고 있으나, 국제 시장 여건 변화로 수입 대황의 품질 저하가 현저해지면서 일본 국내 생산 요망이 높아지고 있다. 홋카이도의 한랭한 기후가 원산지(중국 사천성·청해성 표고 3,000~4,000m 고원)와 유사하기 때문에 재배 적지로 주목받고 있다. 북해대황의 원종 보존은 단순한 학술적 가치를 넘어, 약용자원 자급이라는 산업적 과제와도 직결된다.

    홋카이도대학과 한국 농학의 인연

    150년 역사의 이 대학에는 한국인으로서 잊어서는 안 될 인연이 있다.

    1936년 4월 14일, 임호식이 홋카이도제국대학(현 홋카이도대학)에서 한국인 최초의 농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불과 20일 뒤인 5월 4일, 우장춘이 도쿄제국대학에서 한국인 두 번째 농학 박사가 됐다. 두 사람은 식민지 시대 한국 농학의 쌍벽이었다.

    우장춘 박사는 1935년 ‘배추속 식물에 관한 게놈 분석’으로 유채가 배추와 양배추의 자연교잡종임을 밝혀, 세계 최초로 종의 합성 이론(‘우장춘의 삼각형’)을 제시했다. 이는 다윈의 진화론과 멘델의 유전학을 수정하는 세계적 발견이었다. 해방 후 그는 “조선 성씨 ‘우(禹)’를 버리면 승진시켜주겠다”는 회유를 거부하고, 1950년 가족을 일본에 남긴 채 홀로 귀국하여 한국 농업 발전의 기틀을 다졌다.

    한편, 홋카이도제국대학 농학부 출신인 키하라 히토시(木原均) 교수는 씨 없는 수박을 최초로 개발한 인물이다. 우장춘 박사는 이 기술을 한국에 처음 소개하며 육종학의 가능성을 국민에게 알렸다. 홋카이도대학이 키운 학문적 토양이, 한국 농업 근대화의 씨앗과 닿아 있었던 셈이다.

    약초원을 나오며

    ▲ 약초원 내 북해대황 재배구획. ‘Rhubarb (Hokkai-Daio)’ 명패 뒤로 정성스럽게 정비된 흙밭이 이어진다. 오른쪽에 새로 자라나는 대황 잎이, 뒤편으로 꽃대가 하늘을 향해 솟아 있다. 멸절 위기의 식물을 되살리는 조용한 현장이다. 사진 = 한방조아 취재팀

    초록빛 가로수가 만든 터널을 걸으며 생각했다. 150년 전 삿포로농학교로 시작한 이 대학의 약초원에서 거의 100년간 지켜온 북해대황 10주와, 같은 캠퍼스에서 한국인 최초의 농학 박사가 탄생한 역사가 같은 땅 위에 있다. 약용식물의 보존과 육종학의 혁신이라는 두 줄기가, 약식동원과 종의 합성이라는 이름으로 이 한랭한 섬에서 조용히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약용식물원은 매년 1회 원장인 와키모토 토시유키 교수의 가이드 투어가 딸린 일반공개 행사를 연다. 평상시에도 10월 말까지 평일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3시까지 개원하여 일반인이 자유롭게 견학할 수 있다. 올해는 창기 15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일반공개의 폭이 넓어져, 평소보다 많은 방문객이 이 ‘살아있는 약학 박물관’을 만났다.

    올 여름, 홋카이도를 여행하신다면 삿포로 캠퍼스 안의 약용식물원을 들러보시길 권한다. 2,000년 된 ‘장군’을 만나고, 한국 농학의 뿌리가 시작된 곳을 걸어보는 것. 창기 150주년의 캠퍼스 위에서,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여정이 될 것이다.

    참고자료

    홋카이도대학 약학부 약용식물원 안내판 「희소한 약용식물 홋카이다이오우」 (현장 확인, 2026.06)

    홋카이도대학 창기 150주년 기념 특설 사이트 (150th.hokudai.ac.jp)

    홋카이도대학 약학부·대학원 약학연구원 공식 사이트, 약초원 소개 (pharm.hokudai.ac.jp)

    홋카이도대학 리서치 타임즈, 「薬学部附属薬用植物園で一般公開を実施」

    일본약학회, 「ショウヨウダイオウ Rheum palmatum LINN.」, 2023

    한국농어민신문, 「우장춘 박사와 농업과학기술 발전사 바로 알리기」, 2022.03

    Sciencetimes, 「우장춘 박사에 대한 진실 혹은 오해」

    고등과학원 HORIZON, 「1936년 우장춘, 감격의 도쿄제국대학 박사학위 취득」, 2024

    ※ 이 기사에서 약용식물의 효능에 관한 서술은 문헌에 기록된 전통적 용법이며, 의학적 처방이 아닙니다. 대황은 강한 사하(瀉下) 작용이 있으므로 함부로 복용하지 마시고 반드시 전문가와 상의하십시오.

    ※ 우장춘 박사에 관한 서술은 복수의 학술 자료에서 확인된 사실에 근거하며, 일부 통념과 다른 내용(씨 없는 수박 최초 개발자가 아닌 점, 홋카이도대학이 아닌 도쿄제국대학 출신인 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방조아 · HANBANGJOA · 헤리티지 × 루트 · 홋카이도 취재기

  • 장(腸)을 먹여 키우는 뿌리, 초석잠

    누에 닮은 덩이뿌리 속 올리고당이 장내 미생물을 깨우는 법 — 그리고 장에서 뇌로 이어지는 한 줄기 신호

    [음식한방] 초석잠 · 한방조아


    우리 몸에서 가장 붐비는 곳은 어디일까. 뇌도, 심장도 아니다. 답은 ‘장(腸)’이다. 대장 한 자락에만 수십조 마리의 미생물이 산다. 이들은 우리가 먹은 것을 나눠 먹고, 그 대가로 몸에 이로운 물질을 만들어 돌려준다. 말하자면 장은 거대한 발효 공장이자, 미생물이라는 세입자들이 북적이는 마을이다.

    그 마을에 유난히 좋은 밥이 되는 뿌리가 하나 있다. 생김새는 볼품없다. 누에를 닮았다 하여 이름에 ‘누에 잠(蠶)’ 자가 붙었고, 큰 골뱅이나 통통한 번데기처럼도 보인다. 그러나 이 못난 뿌리가 장 속 미생물에게는 진수성찬이다. 이름하여 초석잠(草石蠶)이다.

    못생겼지만, 엄연한 ‘먹는 뿌리’

    초석잠은 꿀풀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의 덩이뿌리다. 원산지는 중국이고, 일본에서는 ‘쵸로기’라 부르며 정월 요리에 귀히 쓴다. 우리나라에는 일본을 거쳐 들어온 것으로 전해지며, 달고 은은하게 쓴 맛에 사근사근 씹히는 식감 덕에 ‘감로자(甘露子)’, 즉 단 이슬 같은 뿌리라는 별명도 얻었다. 생으로 오래 두기 어려워, 우리 밥상에서는 주로 장아찌나 동치미로 담가 오래 두고 먹는 반찬으로 자리 잡았다. 식품 원료로도 정식 등재돼 있으니, 낯설어 보여도 엄연한 ‘먹는 뿌리’다.

    주인공은 전분이 아니라 올리고당

    초석잠의 진짜 정체는 그 성분에 있다. 흔히 뿌리라 하면 감자처럼 전분 덩어리를 떠올리지만, 초석잠은 다르다. 그 탄수화물의 상당 부분이 전분이 아니라 ‘올리고당’이다. 그중에서도 스타키오스(stachyose)라는 올리고당이 핵심이다. 여기에 뇌 건강 이야기에 자주 등장하는 콜린, 그리고 스타키드린·페닐에타노이드 같은 성분도 함께 들어 있다.⁶

    올리고당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 이 대목이 초석잠 이야기의 심장이다.

    당신의 장 속에서 일어나는 ‘발효’

    올리고당은 우리 몸의 소화효소로 잘 분해되지 않는다. 그래서 위와 소장을 거의 그대로 통과해 대장까지 내려간다. 그리고 바로 그곳에서, 장내 유익균의 먹이가 된다. 이렇게 좋은 균의 밥이 되어 주는 성분을 ‘프리바이오틱스(prebiotics)’라 부른다. 살아 있는 균 자체를 넣어 주는 프로바이오틱스(유산균)와 짝을 이루는 개념으로, 프리바이오틱스는 이미 장에 살고 있는 유익균을 먹여 키운다.

    먹이를 받은 유익균은 이 올리고당을 발효시킨다. ‘초석잠 발효’라는 말의 실체가 바로 이것이다. 항아리 속 발효가 아니라, 당신의 장 속에서 일어나는 발효다. 미생물은 올리고당을 분해하며 수를 불리고, 그 과정에서 장 건강에 이로운 물질을 만들어 낸다. 유익균이 늘면 유해균이 설 자리가 줄고, 장 환경이 한결 정돈된다.

    이 ‘장을 먹이는’ 힘은 이미 산업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한 국내 소재기업은 초석잠에서 프리바이오틱스 성분을 뽑아 피부 미생물의 균형을 맞추는 화장품 원료로 개발해 특허를 등록했고³, ‘초석잠 발효대사체’를 만드는 방법에 대한 특허도 나와 있다.⁴ 반찬으로 소박하게 먹히던 뿌리가, 장과 피부의 미생물을 겨냥한 소재로 다시 태어나고 있는 셈이다.

    실험실이 확인한 것들

    장 이야기에 힘을 보태는 연구도 있다. 순창에서 재배한 초석잠 추출물을 분석한 국내 연구에서는 항산화 활성과 함께, 염증 신호물질(TNF-α, IL-6 등)의 생성을 억제하는 항염 효과, 그리고 식중독을 일으키는 균이나 위장에 사는 헬리코박터균 등에 대한 항균 활성이 확인됐다.² 다만 이는 세포와 시험관 수준의 결과다. ‘초석잠을 먹으면 염증이 낫는다’는 식으로 곧장 이어 붙일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어디까지나 앞으로 더 살펴볼 ‘가능성의 실마리’로 읽는 것이 옳다.

    그리고, 장에서 뇌로

    장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연스레 뇌가 따라온다. 최근 과학은 장과 뇌가 신경과 미생물 대사물질을 통해 끊임없이 신호를 주고받는다는 사실을 밝혀 왔다. 이른바 ‘장-뇌 축(gut-brain axis)’이다. 장이 편안하면 뇌도 그 덕을 본다는 것이다.

    초석잠에도 이 대목에 걸린 연구가 하나 있다. 2024년 국립호남권생물자원관은 알츠하이머를 유발한 실험용 쥐에게 고농도 초석잠 추출물을 먹였더니, 치매 치료제로 쓰이는 도네페질보다 단기기억력을 약 1.1배 더 끌어올렸다고 발표하고 관련 특허를 등록했다.¹

    솔깃한 결과다. 그러나 여기에는 분명한 선을 그어야 한다. 이것은 ‘쥐’에게 ‘고농도 추출물’을 준 실험이지, 사람이 초석잠 반찬을 먹어서 얻은 결과가 아니다.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 근거는 아직 없다. “초석잠이 치매를 예방한다”, “약보다 낫다”는 말은 적어도 지금으로서는 앞서간 이야기다. 초석잠의 뇌 이야기는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 앞으로 지켜볼 연구로 남겨 두는 편이 정직하다. 초석잠의 진짜 무대는, 역시 장이다.

    어떻게 먹을까

    가장 익숙한 방법은 장아찌와 동치미다. 아작아작 씹히는 식감이 좋아 오래 두고 먹기 좋다. 생으로 보관이 어려우니 말려서 가루를 내 두면 쓰임이 넓어진다. 따뜻한 물이나 우유에 타 마셔도 되고, 빵이나 쿠키 반죽에 섞어도 된다. 잘게 썰어 볶은 뒤 차로 달여 마시는 방법도 있다. 한 가지 팁이라면, 초석잠 자체에 은은한 단맛이 있으니 요리할 때 설탕은 줄이는 편이 좋다.

    먹기 전에 짚어둘 것

    좋다고 아무나, 아무렇게나 먹어도 되는 것은 아니다. 임신 중에는 자궁을 수축시킬 수 있어 피하는 것이 좋고, 몸이 냉하거나 장이 찬 사람은 오히려 설사를 겪을 수 있다. 장을 활발히 움직이는 올리고당의 특성상 예민한 사람은 가스가 차거나 배가 더부룩해질 수 있으니, 처음에는 조금씩 시작하는 것이 안전하다. 하나 더, 시장에서는 ‘초석잠’과 이름이 비슷한 ‘석잠풀’, ‘쉽싸리’가 자주 뒤섞여 팔린다.⁵ 사는 것이 정말 초석잠의 덩이뿌리가 맞는지 확인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결국, 장이 먼저다

    건강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흔히 뇌부터, 심장부터 떠올린다. 그러나 몸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장에 닿는다. 장이 편안해야 잘 자고, 잘 먹고, 기분도 맑다. 초석잠은 그 장 속 보이지 않는 마을 사람들—수십조 마리의 미생물—에게 건네는 한 끼의 밥이다. 화려하지 않아도, 매일의 밥상에서 장을 먼저 챙기는 일. 약과 음식의 뿌리가 하나라는 옛말은, 어쩌면 이 못난 뿌리 하나에서도 조용히 증명되고 있는지 모른다.


    참고 자료 및 각주

    아래는 본문에 인용한 연구·자료로, 각 항목의 연구 유형을 함께 밝혀 두었다. 현재 초석잠에 대한 사람 대상 임상시험(RCT) 데이터는 확인되지 않으며, 아래 근거는 동물실험·세포(시험관) 연구·특허·문헌 자료다. 초석잠의 뇌·기억력 관련 내용은 아직 사람에서 입증된 효과가 아니다.

    1. 국립호남권생물자원관, 초석잠 추출물의 단기기억력·인지기능 개선 효과 발표(2024. 10. 29). 연구 유형: 동물실험 — 알츠하이머 유발 형질전환 쥐에 추출물 400㎎/㎏ 투여, 도네페질 대비 단기기억력 약 1.1배 개선. 관련 조성물 특허 등록. (보도: 연합뉴스·SBS 등)
    2. 초석잠 추출물의 항산화·항균·항염 활성 연구(한국학술지인용색인 KCI 등재; 순창 재배 초석잠). 연구 유형: 세포·시험관 연구 — HepG2·RAW264.7·Caco-2 세포에서 항산화, 염증성 사이토카인(TNF-α·IL-1β·IL-6) 억제, 식중독균·헬리코박터균 등 항균 지표 확인. 초석잠 뿌리 추출물의 항산화 활성에 관한 별도 KCI 연구도 함께 참고.
    3. 대봉엘에스, 초석잠 유래 스킨 마이크로바이옴(프리바이오틱스) 소재 개발 및 ‘초석잠 추출물을 포함하는 화장료 조성물’ 특허 등록(등록번호 제10-2335569호, 2022). 자료 유형: 특허·기업 발표.
    4. 초석잠 발효대사체 제조방법(특허 KR101394533B1). 자료 유형: 특허.
    5. 한동하, ‘초석잠 vs 석잠풀 vs 쉽싸리’ 구별과 효능(식의보감 칼럼). 자료 유형: 전문가 칼럼 — 시중 유통 과정의 혼동에 주의.
    6. 초석잠의 성분(콜린·스타키오스·페닐에타노이드 등)과 전통적 활용에 관한 일반 문헌·건강 매체 자료. 자료 유형: 일반 문헌 — 뇌·치매 관련 서술은 대부분 전통적 사용과 성분 추정에 근거하며, 사람 대상 효과가 입증된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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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기사는 공개된 연구와 자료를 바탕으로 한 일반적인 건강 정보이며, 의학적 진단이나 치료·처방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초석잠의 뇌·기억력 관련 내용은 동물실험 단계의 결과로, 사람에 대한 효과가 입증된 것은 아닙니다. 질환이 있거나 약을 복용 중이라면 섭취 전 전문가와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한방조아 · 음식한방

  • 영조대왕 약식동원 밥상

    임금의 밥상에는 약이 숨어 있었다

    ― 조선 최장수 왕 영조의 ‘약식동원(藥食同源)’ 장수 밥상

    [건강밥상] 칼럼 · 한방조아


    여든셋, 임금에게는 기적이었던 나이

    조선의 임금들은 좀처럼 오래 살지 못했다. 스물일곱 분의 왕 가운데 환갑을 넘긴 이는 손에 꼽을 정도였고, 평균 수명은 채 쉰을 채우지 못했다. 가장 좋은 옷이 지어지고, 가장 귀한 약재가 모이며, 천하의 진미가 다 올라오는 자리에 앉아서도 그러했다. 권력의 정점이 곧 건강의 정점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오히려 넘치는 음식과 끊이지 않는 정무, 깊은 밤까지 이어지는 긴장이 임금들의 몸을 갉아먹었다.

    그 틈에서, 홀로 여든셋까지 산 임금이 있다. 영조다.

    여든셋이라는 숫자는 오늘날에도 적지 않은 나이지만, 평균 수명이 마흔을 겨우 넘기던 18세기 조선에서는 그야말로 기적에 가까웠다. 게다가 그는 단지 오래 숨만 붙어 있던 것이 아니었다. 일흔이 넘어서도 흰머리가 거의 없고 피부가 맑았다고 전한다. 쉰두 해라는, 조선 왕조에서 가장 긴 재위 기간 동안 탕평과 균역의 개혁을 밀어붙일 만큼 정신도 또렷했다.

    무엇이 그를 이토록 오래, 그리고 건강하게 살게 했을까. 영험한 단약이었을까, 비밀스러운 보약이었을까. 답은 뜻밖에도 거창한 곳에 있지 않았다. 그것은 매일 아침저녁으로 그의 앞에 놓이던 평범한 밥상 위에 조용히 숨어 있었다. 화려하지 않았으나 빈틈이 없었고, 소박했으나 그 안에 약(藥)을 품은 밥상. 옛사람들은 그것을 일러 약식동원, 약과 음식의 뿌리가 본디 하나라 하였다.


    다섯 번을 세 번으로 — 덜어냄의 지혜

    영조의 밥상을 이해하려면, 무엇을 올렸는가보다 무엇을 덜어냈는가에서 시작하는 편이 옳다.

    본래 조선의 임금은 하루에 다섯 번 상을 받았다. 이른 아침의 초조반(初早飯)에서 시작해 아침 수라, 낮것상, 저녁 수라, 그리고 밤참에 이르기까지. 임금의 하루는 끊임없이 차려지고 물려지는 상들로 채워졌다. 그러나 영조는 이 다섯 번을 과감히 세 번으로 줄였다. 임금에게 허락된 풍요의 절반 이상을 스스로 내려놓은 것이다.

    덜어내되, 흐트러뜨리지는 않았다. 영조는 대신들과 머리를 맞대고 국정을 논하다가도 식사 시간이 되면 회의를 멈추고 수라부터 받았다고 한다. 정무가 아무리 급해도 끼니의 시각만은 어기지 않았다. 다른 임금들이 아침을 부득이 거르거나 늦은 밤 출출함을 야식으로 달래며 식사 리듬을 흩뜨릴 때, 영조의 하루는 늘 같은 시각, 같은 양의 밥으로 단정하게 채워졌다.

    상에 오른 밥 또한 단출했다. 윤기 흐르는 흰 쌀밥 대신, 현미와 보리와 흑미와 콩을 섞은 거친 잡곡밥. 기름진 고기를 앞세우기보다 제철에 난 채소를 곁에 두었다. 아침에는 부드러운 죽 한 그릇, 점심과 저녁에는 밥과 김치, 시금치와 청경채 같은 나물, 그리고 약간의 장류면 족했다.

    오늘날의 언어로 옮기면 이렇다. 소식(小食), 규칙적인 식사, 통곡물 위주의 식단.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그러나 좀처럼 지키지 못하는 그 원칙들을 영조는 삼백 년 전에 묵묵히 실천하고 있었다.


    입맛을 잃은 노왕과 ‘밥상의 네 보물’

    그렇다고 영조의 밥상이 풀과 잡곡만으로 차려진 금욕의 식탁이었다고 여긴다면, 그것은 절반만 아는 것이다.

    『승정원일기』 영조 44년(1768년) 7월 28일. 일흔을 훌쩍 넘긴 노왕이 내의원 도제조 김용택과 마주 앉아 이런 말을 남겼다.

    “나이가 들면서 입맛을 잃은 줄 알았는데, 송이버섯과 날 전복과 새끼 꿩과 고추장이 있으면 밥을 잘 먹는다. 내 입맛이 아주 망가진 것은 아니다.”

    소식하던 임금의 입을 끝내 열게 한 네 가지. 후세 사람들은 이를 영조의 ‘밥상의 네 보물’이라 부른다. 향이 깊은 송이버섯, 바다의 정기를 머금은 전복, 기름기 적고 담백한 꿩고기, 그리고 갓 등장한 신문물 고추장.

    흥미로운 것은 이 네 가지가 결코 입만 즐겁게 하는 사치품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전복은 예부터 기력을 보하는 귀물로 여겨졌고, 꿩고기는 살이 무르고 담백해 소화가 쉬웠다. 치아가 약했던 영조에게는 더없이 알맞은 음식이었다. 그는 “어머니는 절편과 병자(餠炙)를 좋아하시는데, 나는 치아가 약해 먹지를 못한다”고 토로한 적이 있을 만큼 이가 부실했다. 부드럽고 담백한 전복과 꿩은 단순한 별미가 아니라, 노왕의 몸에 맞춘 ‘약이 되는 음식’이었던 셈이다.

    고추장은 또 어떠한가. 지금이야 어느 밥상에나 오르는 흔한 양념이지만, 영조의 시대에는 사정이 달랐다. 고추장이 문헌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이 1720년 무렵, 어의 이시필의 『소문사설』에서였으니, 영조에게 고추장은 갓 세상에 나온 진귀한 발명품이었다. 제조법도 널리 퍼지지 않아 때로는 약재처럼 다루어지던 귀물. 노왕은 그 붉고 매콤한 새 맛에 반찬을 찍어 먹고, 때로는 밥에 쓱쓱 비벼 한 그릇을 비웠다고 한다.

    소박한 밥상 위에 놓인 네 가지 보물. 그것은 사치가 아니라, 입맛 잃은 노년의 몸을 다독이는 영조 나름의 처방이었다. 약과 음식의 뿌리가 같다는 말이, 바로 이 밥상에서 조용히 증명되고 있었다.


    “전복 한 마리도 백성에게는 짐이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가장 빛나는 대목은 그다음에 있다.

    영조가 전복을 좋아한다는 말을 들은 도제조가 곧바로 아뢰었다. “그러면 생복(生鰒)을 따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좋아하시는 음식이니 마땅히 더 갖추어 올리겠다는, 신하로서 당연한 말이었다.

    그러나 영조의 답은 뜻밖이었다.

    “영의정이 호남 어사로 있을 때, 큰 전복 한 마리 따는 것도 백성에게는 폐가 된다고 하였다.”

    그러고는 더 가져오지 말라 일렀다. 때는 영조 44년, 임금의 권세가 하늘을 찌르던 시절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바다의 전복을 모두 상에 올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 앞에서 오히려 멈춰 섰다. 전복 한 마리를 따기 위해 바닷속으로 들어갈 백성의 수고를, 노왕은 잊지 않았다.

    좋아하되 탐하지 않는 것. 누릴 수 있으나 절제하는 것. 영조의 밥상이 단지 ‘오래 사는 밥상’을 넘어 ‘품격 있는 밥상’이 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건강이 몸을 위한 절제라면, 이 한마디는 마음을 위한 절제였다.


    삼 일에 한 번, 의원을 부른 임금

    밥상 밖의 이야기 하나를 덧붙이자. 영조의 장수에는 식습관 못지않게 중요한 비결이 또 하나 있었으니, 바로 ‘꾸준한 점검’이다.

    기록에 따르면 영조는 재위 52년 동안 내의원에서 무려 7천 회가 넘는 진료를 받았다. 한 달에 열한 번 남짓, 사흘에 한 번꼴로 자신의 몸 상태를 살핀 셈이다. 작은 이상도 그냥 넘기지 않고 부지런히 들여다본 것이다. 오늘날로 치면 ‘정기 검진의 달인’이라 할 만하다.

    좋은 밥을 규칙적으로 먹고, 제 몸을 부지런히 살피고, 좋아하는 것 앞에서도 절제할 줄 알았던 임금. 그의 장수는 우연이 아니라, 매일의 작은 습관이 쌓아 올린 성실의 결과였다.


    오늘의 밥상에게 묻는다

    신하들이 장수의 비결을 묻자, 영조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입고 먹는 것이 후하지 않은 것이 곧 보람이다.”

    화려하지 않아도 좋다는 말이다. 넘치지 않아도 충분하다는 말이다. 거친 잡곡밥과 제철 채소, 그리고 가끔의 담백한 전복과 꿩 한 점. 약이 되는 음식을 약처럼 귀히 여기되, 한 끼의 절제를 잊지 않았던 노왕의 밥상은 삼백 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에게 묻는다.

    오늘 당신의 밥상은 무엇으로 차려졌는가. 그 위에는 약이 숨어 있는가, 아니면 과함만이 놓여 있는가.

    영조의 장수 밥상이 일러주는 답은 의외로 간결하다. 소박하게, 규칙적으로, 그러나 때로는 몸을 위해 정성스럽게. 약과 음식의 뿌리는 본디 하나였으니, 가장 좋은 보약은 늘 우리의 밥상 위에 있었다.


    ※ 이 칼럼에 인용된 영조의 발언과 일화는 『승정원일기』(영조 44년 7월 28일 등)와 관련 문헌 기록에 근거합니다. 음식의 건강 효능에 관한 서술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내용으로, 의학적 진단이나 처방이 아님을 밝힙니다.

    한방조아 · 건강밥상

  • 할머니의 녹두 세안이 K-뷰티의 원조였다

    장마철, 피부가 번들거리면서 동시에 당기는 그 기분 나쁜 느낌. 유분은 넘치는데 수분은 부족한 유수분 불균형이다.

    그런데 이 고민, 조선 시대 여인들은 이미 나름의 방식으로 다루고 있었다.

    녹두 가루를 물에 개어 세수하고, 쌀뜨물로 세안했다. 그리고 그 전통이 오늘날 K-뷰티의 한 뿌리가 됐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한국 화장품 수출은 2025년 약 114억 달러로 역대 최고치를 새로 썼고, 글로벌 뷰티 트렌드 보고서들은 ‘한방 원료의 현대적 재해석’을 2026년 K-뷰티의 핵심 흐름 중 하나로 꼽는다. 실제로 조선미녀 같은 브랜드는 인삼·쌀겨 같은 한방 원료를 현대적으로 풀어내 해외에서 두꺼운 팬층을 만들었다.

    할머니의 손끝이 전 세계 화장대에 닿고 있는 셈이다.

    장마철, 곁에 두면 좋은 한방 3종

    녹차 — 차분함. 카테킨을 품은 녹차는 예부터 달아오른 피부를 가라앉히는 데 써온 재료다. 장마철 번들거림이 신경 쓰일 때, 녹차 성분 토너 한 병을 곁에 두는 이유다.

    어성초 — 균형. 한방에서 ‘십약(十藥)’이라 불릴 만큼 두루 쓰였다. 피부가 예민해지는 시기, 어성초 성분 제품을 부분적으로 곁들이는 사람이 많다.

    감초 — 맑음. 설화수부터 이니스프리까지, 적지 않은 제품에 감초가 들어간다. 예부터 피부를 맑고 깨끗하게 가다듬는 재료로 여겨져 온 덕이다.

    장마 밤, 5분 오감 리추얼

    빗소리를 배경으로 켜두고(귀), 라벤더 향초를 켜고(코), 쿨링 마스크팩을 올리고(피부), 눈을 감는다(쉼). 단 5분. 스킨케어가 ‘해야 하는 일’에서 ‘하고 싶은 시간’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 이 글의 성분 이야기와 전통적 쓰임은 정보 제공 목적이며, 특정 질환의 예방·치료 효과를 보장하지 않습니다. 피부 반응은 개인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출처 — 한국 화장품 수출액: 산업통상자원부 / 2026 K-뷰티 트렌드(한방 원료 현대화): 글로벌 뷰티 트렌드 보고서(예: MINTOIRO 「뷰티 트렌드 전망 2026」) 및 업계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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